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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의 역사
글쓴이 : lakabaseball 날짜 : 2019-12-20 (금) 08:31 조회 : 3762

한국야구의 역사

야구를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한 사람은 선교사 질레트이다. 질레트는 1903년 10월에 발족한 황성 기록청년회(지금의 YMCA)의 창립 공로자인데, 1905년 그 회원들에게 야구를 가르쳤다고 한다. 당시에는 야구를 '타구' 또는 '격구'라고 불렀다.



1) 8 ·15광복 이전
한국에 야구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05년, 일본에게 을사조약을 강요당한 해였다. 당시 선교사로 온 미국인 길레트가 황성기숙청년회 회원들에게 야구를 가르친 것이 그 시초이다. 1906년 2월 11일 황성기숙청년회와 덕어(독일어)학교 사이에 최초의 야구경기가 열려 덕어학교팀이 승리하였다.


이후 서울의 보성고등학교·오성학교·경신학교·배재학당 등 여러 야구팀이 조직되어 1911년 11월에는 황성기숙청년회팀이 처음으로 일본원정에 올랐다. 1913년경까지는 황성기독교청년단·일본어학교·독일어학교·도쿄[東京]유학생·대한의원부속학교·한성고등학교(지금의 경기고등학교)·휘문의숙등의 팀이 초기의 요람을 이루었고, 1914~1919년에는 한국의 야구 수준도 돋보이기 시작하였다. 이 당시 활약한 팀은 중앙고보·오성학교·배재고보·휘문의숙·송도고보 등의 팀이었다.
야구의 인기는 점점 높아져 조선체육회가 창립된 1920년 7월 도쿄 유학생 야구단은 조선체육회 주최로 서궐운동장에서 배재학우회팀과 경기를 가졌고, 29일에는 스탠더드 팀과 대전하였으며, 용산철도구락부와도 대전하였다. 11월에는 조선체육회 주최로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가 배재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참가팀은 중학 부에 중앙·경신·휘문·배재·보성 등 5개팀, 청년 부에는 전배재·청년회관·천도교·전경신·삼한구락부의 5개팀이었는데, 배재가 중학 부와 청년 부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였다. 1920년 11월 4일부터 3일간 조선체육회가 주최하는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가 5개 학생 팀과 5개 실업팀이 참가한 가운데 배재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1921년 김준연의 인솔로 서울에 온 도쿄 조선기독청년단은 철도운동장에서 천도교 청년회 팀과 싸워 대승을 거두고 이어 휘문팀도 가볍게 눌렀다. 이 팀은 대구·마산 등지에서도 연승을 거두고 기술지도에 큰 도움을 주었다. 초창기에 가장 괄목할 만한 일은 1922년 12월 8일 미국 메이저리그의 프로야구단 초청이었다. 철도구장에서 전조선 군과 경기를 가졌는데, 결과는 21:3으로 크게 패하였으나 처음부터 승부보다도 미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월등한 수준을 배우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한국 야구계의 기술 향상에 보탬이 되었다. 그후 야구는 발전을 거듭했으나 1938년 조선체육회가 강제 해산되면서 경기가 중단되는 시련을 겪기도 하였다.

2) 조선야구협회의 발족
1923년 5월 23일 당시 체육계의 중진으로 활약하던 윤치영·이원용·허성·이석찬·유용탁 등의 발기로 조선야구협회가 창립되어, 한국 야구가 비로소 본궤도에 올랐다.
같은 해 7월에는 하와이 동포 야구단이 고국을 찾아 여러 차례의 경기를 가졌는데, 배제에게는 이기고 휘문에게는 졌으며 인천에서 상우회팀에, 정주에서는 오산학교에 연승을 거두고 돌아갔다. 그 이듬해 그곳 동포들의 초청으로 중앙YMCA(기독교청년회)의 야구단이 허성의 인솔로 하와이 원정을 떠났다. 전적은 4전 1승 3패로 부진했으나 동포들의 뜨거운 환영 속에 망국의 서러움을 달랬다.
1926년에는 동아일보사 주최로 제1회 4구락부, 즉 중앙·경신·서울(배재)·고려(휘문) 간에 리그전이 열렸다. 이 경기는 경성운동장(지금의 동대문운동장)에서 치러졌는데, 서울이 전승으로 패자가 되었다. 1928년 경성운동장에서 열린 제2회 연희전문 대 경성의전의 정기전에서 연희전문의 이영민은 경성운동장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홈런을 날렸다.
1930년 9월 13일에는 조선야구심판협회가 발족되어 야구계의 건전한 발전에 새로운 면모를 갖추었다. 1932년 6월에는 일본 간사이 대학팀이 원정 와서 체신·철도·경성부청(지금의 서울시청)·경전·전경성팀과 대전하여 4승 1패의 종합전적을 남겼고, 8월에는 도쿄제국대학팀이 경전·식은·철도 팀과 싸워 2승 1패를 거두고 돌아갔다.
또한 10월에는 미국의 흑인 프로야구단(로열 자이언트)이 조선신문사 초청으로 내한, 경전·체신·철도 팀과 대전하여 전승을 거두고 돌아갔는데, 그 세련된 플레이가 한국 야구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한편, 1934년 이영민은 일본 요미우리신문사의 초청으로 일본에 원정 온 미국 프로야구단과 싸울 전 일본군의 외야수로 뽑혀 활약하기도 했다.
이렇게 활발한 경기활동을 하던 한국 야구계도 1938년에 이르러 민족체육의 총 본산인 조선체육회가 강제 해산되어 일본인들이 조직한 조선체육협회에 흡수됨으로써 적극성을 잃었다. 같은 해 8월 일본 도쿄 고라쿠엔구장에서 거행된 일본 도시대항 야구대회에 출전한 전경성군은 결승전에서 도쿄 팀에 석패 했으나 1940년에는 같은 대회에서 패권을 차지하였다.

3) 8 ·15광복 이후
1945년 10월 15일 일제의 굴레에서 벗어난 야구인 들은 장족의 발전을 하여 현재와같은 야구강국으로 이루게되었습니다



대한야구협회 연혁



1946.3.18.조선야구협회 창설

1946.10.대한체육회 가맹

1954.10.대한야구협회로 개칭

1954.12.아시아야구연맹(BFA) 가입

1971.1.대한연식야구협회와 통합

1972.11.국제야구연맹(IBA) 가입

1979.1.각급 연맹(국,중,고교,대학,실업연맹)을 해체하고 대한야구협회에 흡수

1982,.세계선수권대회 우승

1982..프로야구단 창설



창단 프로 팀은

서울 MBC청룡,

충청도OB베어스,

전라도 해태타이거스,

인천 경기 강원 삼미슈퍼스타스,

대구 경북 삼성라이온스,

부산 경남 롯데자인어츠





1991.1각급연맹 부활승인 규약개정(리틀연맹 발족됨)

1998,.아시안게임 우승

2000,시드니올림픽 3위



2002,아시안게임 우승

2003.12.30.사답법인화

2008,베이징 올림픽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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